'나’라는 시간이 머무는 공간

'나’라는 시간이 머무는 공간
3/26/25, 12:00 AM
'나’라는 시간이 머무는 공간

"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 거실에 켜져 있던 TV 속 주인공이 담담하게 읊조린 이 한 문장이 유독 귀에 들어왔다. 보고 있던 드라마도 아니었지만, 다른 일을 하던 나를 집중시키기 충분했다. 정작 그 이후의 장면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를 곁에서 지켜본 누군가가 무심히 던진 말 같아서, 거실에 앉아 있던 가족의 눈치를 살피게 했다. 물론,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때부터, 일기를 쓰려고 할 때마다 이 문장이 귓가를 맴돌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나에게 일기는 급할 때만 찾는 종교와 같다. 평소에는 전혀 찾지 않다가, 도저히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에만 찾게 되는. 비슷한 날들이 반복되는 듯한 일상 속에서 연초에 열심히 쓰던 다이어리는 빈칸이 점점 늘어나고, 한 달 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려면 휴대폰 캘린더 속 시간, 장소, 사람 이름으로 적어놓은 일정을 확인하거나 사진첩 스크롤을 내리는 게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던 작년 4월, 자주 보던 유튜브 채널에서 ‘감정을 해소하기 어려울 때는 일단 글로 써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디서 한 번쯤은 들어본 말이었지만, 속는 셈 치고 하루의 끝에 두세 문장을 남겨보기로 했다. 당시 나는 날짜가 없는 줄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작업 아이디어나 간단한 스케치를 하는 정도였기에, 그 노트에 처음으로 감정만 들어있는 충동적인 기록을 남겼다. 지금 떠올려보면, 그 첫 문장은 감정의 표출이라기보다 거의 비속어에 가까운 분노의 표효였다. 머릿속을 맴돌던 날것의 말이 손을 통해 글자로 적히고, 다시 눈으로 확인되었을 때의 낯설고 어색한 느낌. 결국 나는 그 종이를 찢어 작업실 휴지통 가장 깊숙이 밀어 넣었다. 그런데 기묘한 해방감은 분명히 남았다. 얼굴이 화끈거리던 열기가 가라앉자, 분노는 어느새 후련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이후, 답답할 때면 또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문장들은 점점 길어졌고, 단순한 감정 토로를 넘어 그 감정의 원인을 정리하고 분석하는 과정이 되었다. 어떤 날은 단숨에 A4 두 장을 채울 정도로 글을 써 내려가기도 했다. 흐름을 따라가며 다시 읽어보니, 막연한 분노 속에서도 상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어수선하던 머릿속이 차분히 정리되었다. 그날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게 일기는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라, 생각을 다듬고 나를 마주할 수 있는 대화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일기의 형식이 어떻든, 그것은 결국 나 자신과의 대화다. 당시의 기록이 한 달 후의 나에게는 거울처럼, 5년 후의 나에게는 책 사이에 끼워둔 낙엽처럼 다가올지도 모른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경험이 피부에 흔적을 남기듯, 내 감정과 생각도 일기를 통해 켜켜이 쌓이며 나를 형성해간다. 이번 작품은 그런 일상의 기록이 단순한 메모를 넘어, 자아를 구축하고 나라는 존재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스스로를 정의해 나가고, 그 흐름을 담아낸 기록들은 ‘나’로 존재함을 더욱 선명하게 느끼게 한다.
2025.02.19
'나’라는 시간이 머무는 공간
"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 거실에 켜져 있던 TV 속 주인공이 담담하게 읊조린 이 한 문장이 유독 귀에 들어왔다. 보고 있던 드라마도 아니었지만, 다른 일을 하던 나를 집중시키기 충분했다. 정작 그 이후의 장면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를 곁에서 지켜본 누군가가 무심히 던진 말 같아서, 거실에 앉아 있던 가족의 눈치를 살피게 했다. 물론,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때부터, 일기를 쓰려고 할 때마다 이 문장이 귓가를 맴돌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나에게 일기는 급할 때만 찾는 종교와 같다. 평소에는 전혀 찾지 않다가, 도저히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에만 찾게 되는. 비슷한 날들이 반복되는 듯한 일상 속에서 연초에 열심히 쓰던 다이어리는 빈칸이 점점 늘어나고, 한 달 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려면 휴대폰 캘린더 속 시간, 장소, 사람 이름으로 적어놓은 일정을 확인하거나 사진첩 스크롤을 내리는 게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던 작년 4월, 자주 보던 유튜브 채널에서 ‘감정을 해소하기 어려울 때는 일단 글로 써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디서 한 번쯤은 들어본 말이었지만, 속는 셈 치고 하루의 끝에 두세 문장을 남겨보기로 했다. 당시 나는 날짜가 없는 줄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작업 아이디어나 간단한 스케치를 하는 정도였기에, 그 노트에 처음으로 감정만 들어있는 충동적인 기록을 남겼다. 지금 떠올려보면, 그 첫 문장은 감정의 표출이라기보다 거의 비속어에 가까운 분노의 표효였다. 머릿속을 맴돌던 날것의 말이 손을 통해 글자로 적히고, 다시 눈으로 확인되었을 때의 낯설고 어색한 느낌. 결국 나는 그 종이를 찢어 작업실 휴지통 가장 깊숙이 밀어 넣었다. 그런데 기묘한 해방감은 분명히 남았다. 얼굴이 화끈거리던 열기가 가라앉자, 분노는 어느새 후련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이후, 답답할 때면 또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문장들은 점점 길어졌고, 단순한 감정 토로를 넘어 그 감정의 원인을 정리하고 분석하는 과정이 되었다. 어떤 날은 단숨에 A4 두 장을 채울 정도로 글을 써 내려가기도 했다. 흐름을 따라가며 다시 읽어보니, 막연한 분노 속에서도 상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어수선하던 머릿속이 차분히 정리되었다. 그날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게 일기는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라, 생각을 다듬고 나를 마주할 수 있는 대화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일기의 형식이 어떻든, 그것은 결국 나 자신과의 대화다. 당시의 기록이 한 달 후의 나에게는 거울처럼, 5년 후의 나에게는 책 사이에 끼워둔 낙엽처럼 다가올지도 모른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경험이 피부에 흔적을 남기듯, 내 감정과 생각도 일기를 통해 켜켜이 쌓이며 나를 형성해간다. 이번 작품은 그런 일상의 기록이 단순한 메모를 넘어, 자아를 구축하고 나라는 존재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스스로를 정의해 나가고, 그 흐름을 담아낸 기록들은 ‘나’로 존재함을 더욱 선명하게 느끼게 한다.
2025.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