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물 기;記

아물 기;記
8/20/24, 12:00 AM
아물 기;記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의 철학적 정의 속에서 "타인과의 교감"은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필수적이지만, 때로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쓴다. 소셜네트워킹의 발달로 인해 나의 일상은 보다 쉽게 노출되고, 다른 이의 사생활 또한 별다른 노력 없이 엿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타인의 시선은 과거에 비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치부를 숨기려고 애쓰고, 타인에게 비쳤으면 하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그러다 자신보다 잘 치장된 타인의 모습을 보면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다시 자신을 더 화려한 모습으로 치장하려 부단히 노력하게 된다. 다수는 이러한 "본질이 사라지고 허례허식을 쫓는 모습"이 잘못되었다고 평하지만, 문득 이런 세태를 부정적으로만 봐야 하는지 의문이 들며,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 또한 나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의 치부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드러내되 오히려 매력적으로 드러내는 방향에 초점을 맞춰 작업하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서 숨기고 싶은 것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여러 잊고 싶은 감정과 기억을 떠올리다 문득 작업하다 생긴 흉터들에 눈이 멈췄다. 혹여나 남들이 오해할까, 걱정할까, 또 참견할까? 시선이 닿는 게 두려웠던 나는 무의식적으로 소매를 당겨 입거나 컨실러로 상처를 가리고 있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치부로 볼 수 있는 흉터를 보다 아름답게 표현하여 당당하게 드러내는 작업을 해보고자 했다. 흉터는 내 몸에 생기는 특정 사건의 기억으로부터 비롯된다. 상처가 깊을수록 흉터는 더 진하고 강한 존재감으로 남게 되지만, 이는 상처가 생긴 그 순간을 그만큼 강렬하게 인지하는 몸의 기억일 것이다. 이번 작품을 시작하며 타인에게 보일 나의 치부를 아름답게 포장하여 보여주는 것을 첫 목표로 삼았지만, 작업을 진행하면서 내가 가장 보여주기 싫었던 부분을 오히려 당당히 보여줄 수 있어, 갇혀있던 타인의 시선으로부터의 해방감마저 느낄 수 있었다. 비록 흉터에 담긴 기억이 불쾌하고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기에 이를 완전히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지만, 이를 아름다워 보일 수 있게 만드는 일종의 갑옷을 두름으로써 그 불쾌한 기억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길을 발견했다. 작품에 드러난 커버 업 타투는 흉터를 배경 삼아 새로운 형태를 그려낸다. 그리고 그 라인을 통해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는 단순히 치부를 숨기는 것이 아닌, 세상에 나설 힘을 얻기 위한 갑옷이다. 흉터 위에 이야기를 새기는 이번 작업을 통해 나와 어울리는 옷을 입고, 타인의 시선에 맞설 수 있는 힘을 조금은 가질 수 있었다. 여러 이유로 숨기고 싶었던 나의 내면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한 첫 발자국인 이번 전시가, 나뿐만이 아닌 자신을 드러내는 겁이 많은 이의 어깨를 토닥여 줄 수 있는 첫 단추가 되길 바란다.
-김아야
202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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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의 철학적 정의 속에서 "타인과의 교감"은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필수적이지만, 때로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쓴다. 소셜네트워킹의 발달로 인해 나의 일상은 보다 쉽게 노출되고, 다른 이의 사생활 또한 별다른 노력 없이 엿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타인의 시선은 과거에 비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치부를 숨기려고 애쓰고, 타인에게 비쳤으면 하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그러다 자신보다 잘 치장된 타인의 모습을 보면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다시 자신을 더 화려한 모습으로 치장하려 부단히 노력하게 된다. 다수는 이러한 "본질이 사라지고 허례허식을 쫓는 모습"이 잘못되었다고 평하지만, 문득 이런 세태를 부정적으로만 봐야 하는지 의문이 들며,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 또한 나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의 치부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드러내되 오히려 매력적으로 드러내는 방향에 초점을 맞춰 작업하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서 숨기고 싶은 것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여러 잊고 싶은 감정과 기억을 떠올리다 문득 작업하다 생긴 흉터들에 눈이 멈췄다. 혹여나 남들이 오해할까, 걱정할까, 또 참견할까? 시선이 닿는 게 두려웠던 나는 무의식적으로 소매를 당겨 입거나 컨실러로 상처를 가리고 있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치부로 볼 수 있는 흉터를 보다 아름답게 표현하여 당당하게 드러내는 작업을 해보고자 했다. 흉터는 내 몸에 생기는 특정 사건의 기억으로부터 비롯된다. 상처가 깊을수록 흉터는 더 진하고 강한 존재감으로 남게 되지만, 이는 상처가 생긴 그 순간을 그만큼 강렬하게 인지하는 몸의 기억일 것이다. 이번 작품을 시작하며 타인에게 보일 나의 치부를 아름답게 포장하여 보여주는 것을 첫 목표로 삼았지만, 작업을 진행하면서 내가 가장 보여주기 싫었던 부분을 오히려 당당히 보여줄 수 있어, 갇혀있던 타인의 시선으로부터의 해방감마저 느낄 수 있었다. 비록 흉터에 담긴 기억이 불쾌하고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기에 이를 완전히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지만, 이를 아름다워 보일 수 있게 만드는 일종의 갑옷을 두름으로써 그 불쾌한 기억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길을 발견했다. 작품에 드러난 커버 업 타투는 흉터를 배경 삼아 새로운 형태를 그려낸다. 그리고 그 라인을 통해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는 단순히 치부를 숨기는 것이 아닌, 세상에 나설 힘을 얻기 위한 갑옷이다. 흉터 위에 이야기를 새기는 이번 작업을 통해 나와 어울리는 옷을 입고, 타인의 시선에 맞설 수 있는 힘을 조금은 가질 수 있었다. 여러 이유로 숨기고 싶었던 나의 내면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한 첫 발자국인 이번 전시가, 나뿐만이 아닌 자신을 드러내는 겁이 많은 이의 어깨를 토닥여 줄 수 있는 첫 단추가 되길 바란다.
-김아야
2024.08.20